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꿈꾸는 광주여행
 
광주 하면 뭐가 떠오르는가?
광주 민주화 운동, 무등산수박, 광주비엔날레 뭐 이 정도 아니겠는가? 나도 이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 개인적으로는 군대동기들끼리 갔던 충장로 근처 백반 집,
그리고 고등학교 때 광주터미널 근처에서 봤던 터미네이터 영화가 생각난다.
그러고 나서 더 이상은 없다.
어떤 컨셉으로 광주 이야기를 풀어갈까
정치가도 아닌데 광주의 민주화 운동에 대해서 쓰기도 민망하고 그렇다고 그들의 한에 대해서 모른 체 하자니 미안하고 참 어렵다. 하지만 이번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알았다 어렴풋하게 광주의 진가가 무엇인지를 무등산 증심사 의재미술관 무등산권역의 소쇄원까지 다녀온 여행이었다. 소쇄원이야 여행으로 밥 벌어 먹는 사람으로서 수도 없이 다녀왔지만 미안하게도 증심사와 의재 미술관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 늘 답은 현장에 있는 것이다. 발로 밟아보고 느껴봐야지 만이 그 진가를 알 수 있다. 다녀오고 나서 무등에 답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한 무등을 생각하며 광주를 찾았다.

이번 여행은 여러 사람이 동행한 여행이었다.
시골에 계신 연로하신 어머니, 그리고 곧
제대할 우리 집 장조카 여기에 광주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25년 지기 군대동기
남현이까지 조합이 참 이상하기는 했지만 그 어떤 여행보다 행복하고 소중한 여정이 아니었나 싶다.
어머니는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멀리 여행을 떠나지 못한다. 그래서 막둥이가 어디만 모시고 가면 정말 어린아이처럼 좋아라 하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광주 무등산입구에 도착했다.
 
 
이번에 무등산은 우리나라 21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승격이 됐다. 높이 1186미터, 삼존석, 규봉의 법화대, 설법대, 능엄대, 의상봉, 비로봉, 반야봉등 이름만 들어도 무등산이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는 산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듯 무등산은 불교적 색채가 강한 산이다. 이름에서도 불교의 무유등등 이라는 말에서 왔다고 하는데 이는 부처님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어서 견줄이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아무 등급 없이 무등한 세상을 꿈꿔서 이름 지었다고도 한다. 광주시민의 무한 사랑을 받고 있는 무등산은 보통 원효사계곡에서 시작해서 원효사를 거쳐서 입석대,서석대 중머리재로해서 증심사로 내려오는 코스를 택하던가 아니면 증심사 입구에서 그 반대방향으로 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을철이면 중머리재 억새가 아름다워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산이다. 
 
일요일아침부터 가을 산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어머니 때문에 조카가 차를 가지고 증심사 주차장까지 가고 친구와 나는 걸었다. 어머니도 함께 걸었으면 좋으련만 이제는 다리 힘이 없으셔서 조금만 걸어도 버거워하신다. 그래도 장조카가 있어서 다행이다. 친구와 오랜만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증심사로 향한다. 인생이라는 긴 여행에서 이렇게 좋은 도반이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가! 20살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얼굴 한번 찌푸리지 않고 화 한번 안내고 지금까지 우정을 지켜온 친구이다.  그래서 나는 늘 이 친구를 볼 때면 내가 미안하고 부끄럽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좀더 잘해야지 더 베풀려고 노력한다. 살아있는 보살이 따로 없다. 이러한 친구와 함께하는 여행이니 발걸음이 가볍지 않겠는가, 그간 있었던 이야기며 광주이야기 그리고 무등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새 증심사 일주문이 보인다.
 
 
친구이야기로는 광주는 젊은 사람들이 산을 많이 찾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유독 젊은 사람들이 많다. 연인서부터 젊은 남자들이 많다. 거기에 가족단위로 산행하는 사람들도 많다. 확연하게 서울 북한산을 찾을 때 느끼는 분위기하고는 뭔가가 틀렸다. 젊은 사람이 많아서 활기찬 걸까? 그 생동감에 나도 감염이 된 듯 기분이 업 돼서 괜히 좋았다. 그래서 우리의 서울 근교 산에도 이렇게 젊은 사람이 넘쳐나고 가족단위 산행 객들이 많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해본다. 공부하느라 학원 가느라 뭐가 그리 바쁜지 아이들하고 산행하는 사람을 별로 본적이 없다. 그런 생각을 하고 나서부터 사람들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놀 거리가 없어서 다 산으로 오는 걸까, 아니면 어려서부터 부모님과 산에 다니기 시작해서 청년이 돼서도 저렇게 산에 오늘 걸까 어찌됐던 너무나 부러운 광경이 아니었나 싶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고 사람이 형형색색 단풍보다 아름답다는 걸 실감했다. 
어머니께서 취백루 앞 화단에 조카와 앉아 계신다.
 
 
분명 본전 뜰 까지는 가지 못하시지만 거기에 앉아서도 당신은 우리 팔 남매 잘되게 해달라고 정성으로 빌었을 것이다.
멀리서 어머니를 불러본다. 고개를 들어 막내아들을 쳐다보시는 어머니! 많이 늙으셨다. 취백루를 받치고 있는 저 늙은 느티나무처럼 자식들을 위해서 그 약하디 약한 어깨를 받치고 계셨던 어머니! 이제 그러할 날도 머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괜시리 눈물이 났다. 친구가 있어서 애써 눈길을 돌렸지만 못난 자식들 땜에 저렇게 고생만 하시다가 이제 기운이 다 떨어져 본전 뜰에도 올라오지 못하시고 사천왕문까지만 겨우 오셔서 앉아 계시는 구나 어머니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욱 많이 모시고 여행 다니도록 하겠습니다.  
 
원효사 반대편에 있는 증심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송광사에 속한 사찰이다. 신라 680년 철감선사 도윤이 창건했으며 고려시대(1094)에 혜조국사가 중창했다. 정유재란때 소실된 것을 1609(광해군 1)에 네번째 중창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선 가파른 경사에 자리잡은 사찰이다 보니 부석사처럼 축대가 눈길을 끈다. 특히 취백루를 짓기 위해 성벽처럼 높은 축대가 관광객들의 시선을 끈다. 거기에 수많은 돌들과 함께 취백루를 받치고 있는 느티나무가 이 증심사의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그러한 취백루에서 바라보는 가을색이 너무도 아름답다. 차도 한잔 마실 수 있는 공간이어서 증심사에서 가장 사랑 받는 공간이기도 하다. 취백루 앞으로 본전 뜰이다. 공간이 넓지 않아서 좌우로 행원당과 적묵당이 좁게 자리를 잡았다. 대웅전 옆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도 눈 여겨 봐야 될 유산이다. 탑은 크지 않지만 7층석탑이다. 옴마니 반메훔이라는 산크리스트어가 새겨진 이색적인 탑이다. 하지만 필자를 사로잡은 건축물은 공간이 없어서 산신각 지을 수가 없었던지 90도 비탈에 받침대를 세우고 만든 1칸짜리 산신각이었다. 1칸짜리 맛배지붕을 한 건물, 누구의 아이디어였을까 공간이 부족하면 어딘가 까버리고 공간을 넓혀서 건물을 앉혔을 법도 한데 이 건축가는 자연을 그대로 두고 건물을 크기를 줄이고 단순화 시켜서 산신각을 만든 것이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자연을 배려한 그의 마음에 고개를 숙일 따름이다. 너무도 쉽게 자르고 뚫어 버리는 일부 건축가에게 경종이 될만한 건축물이 아닌가 싶다. 이것이야 말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 그리고 불교와 산신의 공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취백루 아래에서 조카가 빼준 자판기 커피를 어머니와 함께 마신다.
그래 달달한 어머니표 커피! 이세상에서 가장 만난 커피다. 그것도 가을이 깊어가는 산중에 앉아서 마시는 커피, 내가 처음 커피를 접 한 건 어머니 때문이었다. 고창 시골마을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꽤 신식이었던 것 같다. 초등학교 가기 전부터 어머니가 마시는 커피를 맛봤다. 그때야 커피 빼고 하얀 프림만 타서 달달하게 우유처럼 먹었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아니면 프림만 한 숟갈씩 먹어도 너무나 맛있는 먹거리였다. 프림이 줄어들면 어머니께서는 종종 막둥이가 프림을 다 먹는 구나 하셨다. 어머니는 정말로 커피를 좋아했다. 지금이야 머그 컵이 흔하디 흔하지만 그 시절에도 어머니는 커다란 머그 컵에 커피를 드셨다. 시골 분들은 그렇게 큰 컵에 드신다고 뭐라 했지만 어머니는 게의치 않았다. 그래서 지금도 추억의 집 같은 데서 그 오래된 동서 커피 통이나 맥스웰 프림 통을 보면 어머니가 생각이 난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커피가 이제는 아메리카노, 예카체프, 게이샤커피를 찾고 있으니 세월이 빠름뿐 만 아니라 먹고 사는 문제가 이렇게 발달된 것에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어머님은 다시 차로 내려가고 친구와 나는 슬슬 왔던 길로 다시 내려온다.
일주문에서 조금만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의재미술관 간판이 보였다. 
 
 
친구랑 입구 쪽으로 들어가는데 건물 앞으로 빨갛게 물든 단풍이 너무도 고와서 걸음을 멈추고 사진을 찍는다. 숨이 멎을듯한 표현이 딱 맞는 풍경이다. 사람과 미술관 그리고 자연이 어우러진 풍경이 호흡을 멈추게 한 것이다.

자연 속에 그대로 얹혀 있는 의재 미술관!
누구의 솜씨일까 어떻게 있는 듯 없는 듯 저렇게 건축을 했을까? 건축은 프레임으로서만 존재하며 자연을 적극적으로 매개하는 수단일 뿐이라는 건축가 승효상의 표현을 감동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다.
탁월한 안목에 감탄하면서 미술관 안으로 들어갔다. 9월의 매화전이 열리고 있었다. 안쪽에 차를 마시는 처자들이 보인다. 그들을 방해하는 듯 해서 조심조심 들어간다 창가쪽으로 와인병이며 컵들이 진열돼 있다. 창밖의 단풍과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이 따로 없다. 저러한 작품이 있거늘 안의 전시물이 무에 그리 대수겠는가, 기대하지 않았는데 참으로 멋진 풍경을 본 것 같아 너무도 기뻤다. 친구는 무등산에 그렇게 와봤는데 처음 들어 왔다고 했다. 그렇지 산행하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치기 쉬운 미술관이다. 하지만 의재 허백련 선생에 대해서 한번이라도 들어본 사람이라면 아니 그림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 빠트리지 않고 찾는 성지 같은 곳이다. 특히 추사를 사랑하고 소치 허련을 아끼는 사람들일이라면 말이다.
전라남도 특히 광주를 예향의 고장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있다. 진도나 목포 광주에 가면 쉽게 한국화 한 폭 정도는 왠 만한 가정집에서 쉽게 볼 수가 있다. 전주도 예향이라고 말하지만 기실 그림이 좀 빠지기 때문에 광주를 더 쳐주는 경향이 있다. 광주 비엔날레가 그냥 생긴 것이 아닌 것이다. 그 뿌리를 좀더 알아보면 우리는 추사 김정희와 그의 제자 소치 허련(허유)를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예향 광주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추가 김정희 그가 누구이던가 조선시대 그림이면 그림, 글씨면 글씨, 문장이면 문장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천재 지식인이었다.  이러한 추사를 시골뜨기 소치가 찾아간 것이다. 그래도 고고하기 짝이 없던 추사는 이런 소치를 알아보고 그의 문하에 들인다. 그 후 가장 아끼는 제자로 키운다. 소치의 재주를 알아본 것이다. 소치는 그 밑에서 정말로 열심히 그림을 배우고 글씨를 배웠다. 스승이 제주로 유배를 갔을 때는 그 많은 제자 중에 이상적과 함께 소치만이 제주도까지 내려가서 시중도 들고 못다한 배움을 청했던 정 깊은 사람이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제지간의 정인가! 그 당시 제주는 목숨을 걸고 가야만 하는 통한의 섬이었는데 말이다. 목숨까지도 스승을 위해 내건 소치의 정신을 높이 사야 될 것이다. 이러한 소치 후손 중에 2 3 4대에 걸쳐 유명한 화가가 태어났다. 우선 직계손자인 남농 허건이 목포에서 평생 그림을 그리면서 보냈고 이곳 광주 무등산 자락에서는 의재 허백련 선생이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의재야 직계는 아니었지만 양천 허씨의 예술적 유전자가 깊이 박혀 있었던 것이다. 남농이건 의재건 모두다 이 지방 사람들뿐만 아니라 타지 사람들에게도 존경 받는 인물이 아닌가 싶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본다. 자연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한 정신이 없었다면 어쩌면 그들도 한낱 그림 잘 그리는 화가로 기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달랐다. 예술적 경지에서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면에서도 후대들의 존경을 받을만한 업적을 세운 이유일 것이다. 최근 한국 근대화 100선 전이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렸다거기서 두 거목의 그림을 본 순간 어찌나 반갑고 존경심이 일던지 딸아이에게 열심히 그들의 작품세계에 대해서 설명해 줬던 기억이 난다. 허백련 선생의 체취를 느낀다. 선생님이 썼던 붓이며 찻잔을 관람했다. 지하에서 바라보는 바깥풍경이 이색적이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일본 나오시마 섬에 있다는 지중 미술관이 떠올랐다. 지하에서 어쩌면 이렇게 하늘을 볼 수 있게 설계했을까, 다시 한번 건축가의 안목에 박수를 보낸다.

어머니 때문에 근처의 춘설헌까지 가지는 못했다.
못내 아쉬웠지만 다음을 기약하기로 했다. 선생님은 평생 그림을 그렸지만 추사 김정희소치 허련 처럼 우리 차를 무척이나 사랑하셨던 분이다. 그래서 그의 사상이 그대로 묻어나는 춘설헌은 꼭 들러야 하는 코스이기도 하다. 차 마시는자 흥하고 술 마시는자 망하리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로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너무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명구가 아닌가 싶다. 술이 너무 흔하고 또한 너무 과하게 마셔서 나라가 흥청망청해지면 위태롭다.
그래서
커피를 마시고 차를 마시는 문화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의재미술관에 가면 선생이 평생을 나침반으로 삼으셨던 삼애사상을 되새겨 봐야 할 것이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을 사랑했던 의재 허백련 선생 그는 무등산만큼이나 광주사람들에게 큰 어른으로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의재 선생의 글씨며 그림을 관람하고 나서 미술관을 나왔다.
친구는 어이! 자네 덕에 이렇게 좋은 곳을 처음 들어와봤네 아이들하고 꼭 한번 다시 와야겠다고 이야기한다. 너무 흐뭇했다. 그렇다. 이제는 술을 좀 멀리하고 차를 가까이하는 시대가 와야 될 것이다. 미술관에서 주차장까지 내려오는 내내 행복했다. 그러한 훌륭한 큰 어른을 모시고 있는 광주사람이 부러웠다. 전국의 광역시와 비교했을 때 생산능력도 떨어지고 비록 잘살지는 못하지만 정신적 자부심만큼은 그 어떤 도시에도 뒤지지 않는 광주, 이러한 큰 어른 들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기분 좋게 내려오는데 무등산 수박 빵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하나 나 하나 두 개를 샀다. 말로만 듣던 무등산 수박으로 만든 빵이란다. 상큼한 수박 향이 나는 소가 색다르다. 귀한 무등산 수박으로 짠 엑기스를 만들어서 관광객에게 먹어보라고 권한다. 맛있다. 무등산 수박 아이들만하다고 하는 수박을 제대로 본적이 없다. 그만큼 수량이 적어서 일반인들에게는 귀한게
무등산 수박이다. 증심사에서 다시 우리는 충장사 방향으로 해서 소쇄원으로 차를 몰았다. 무등산 자락을 넘어가는 길인데 이 길은 가을에 찾아야 제격이다. 길 양 옆으로 심어놓은 단풍나무가 내장사 저리 가라다 꼭 내리지 않아도 단풍을 실컷 감상할 수 있다. 가을 드라이브 코스로는 이 근방에서 최고가 아닌가 싶다.
 
 
가을을 만끽하며 고개를 넘고 충장사를 지나자 소쇄원 주차장이 나왔다. 여기는 이제 담양 땅이다. 무등산 원효계곡을 따라 수많은 정자와 원림이 자리한 가사문화권에 온 것이다. 일찍이 계산풍류가 발달한 곳이다. 조선시대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여기서 자연을 찬미하고 시대를 아파하고 또한 문학에 대해서 토론했던 지성의 산실인 것이다.

그 중에 소쇄원은 거의 송순의 면앙정과 더불어 가장 중심이 되는 아지트가 아니었나 싶다. 
늘 소쇄원에 갈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사람일 별로 없기를 바란다. 그 기대에 부응해서 일요인데도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 친구는 이곳에는 와본 적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더울 때 와서 아이들이 짜증만 내고 갔다는 푸념까지, 그래 소쇄원은 사전 배경지식 하나도 없이 방문했다가는 그냥 평범한 관광지와 다를 바 없는 밋밋한 여행지이다. 하지만 설명을 들으면서 보거나 아니면 사전에 조금만 공부를 하고 가면 훨씬 많은 것들이 보이고 문화재 이면의 것을 볼 수 있는 통찰의 힘이 생긴다. 그렇다. 소쇄원은 공부하고 봐야 되는 여행지이다. 내가 아는 지식 선에서 열심히 친구에게 설명을 해주면서 소쇄원을 즐겼다. 이렇게 많은 뜻이 있었냐 면서 친구가 좋아라 한다. 그래도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역사는 최고점수를 맞았다고 하면서 말이다. 이런게 바로 지적 감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감상적 감동만이 감동이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무수한 감동을 맛보면서 살지만 지적 감동 또한 커다란 기쁨이다. 약간은 이성적 감동에 속하지만 이러한 감동에 익숙해지면 이 또한 삶을 살아가는 커다란 행복이다. 배움의 기쁨을 일찍이 공자는 이야기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잘난 척 할 필요는 없지만 어느 정도 공부하면서 떠나는 여행도 참으로 가치 있는 여행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우리같이 공부 못하는 사람이 너무 학문 쪽으로 치우치면 머리 아프기 십상이다. 적당하게 하는 것이 더더욱 중요하다.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소쇄, 제월, 광풍! 아마 이러한 이름의 뜻만 제대로 파악해도 소쇄원의 50%는 먹고 들어가는 셈이다. 비 오고 난 뒤에 부는 그 청량한 바람을 기억하시는가, 그러한 것이 바로 소쇄 인 것이다 비 갠 뒤 밤이 오고 휘영청 달이 떴다. 이 얼마나 깨끗하고 밝은 달인가! 이것이 바로 제월이다. 광풍 또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소쇄원에 가면 오감을 다 열고 둘러봐야 된다. 사각거리는 대나무 숲의 청각 어둑 어둑 초입의 대숲을 지나면 일순 밝아지는 대봉대 애월담의 명, 그리고 광풍각의 높이와 제월당의 높이를 다르게 해서 시각과 청각의 레벨을 다르게 한 양산보의 탁월한 건축적 안목까지. 눈뿐만 아니라 청각까지도 고려한 건축학적 탁견에 감탄 감탄할 뿐이다. 그뿐인가 애월담 꺾어 지는 담장은 또 어떠한가!  
 
계곡위로 담을 쌓은 그 천연스러움이야말로 소쇄원의 가장 큰 보물이기도 하다.
소쇄원을 볼 때 마다 느끼는 거지만 나는 정말 존경한다. 옛 선비들의 그 끝 모를 성찰의 깊이를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여기에서도 보여지는 것이다. 그렇다이번 여행의 컨셉은 공존이다. 모두가 함께 사는 것 조화롭게 인간과 인간, 일등과 꼴등 인간과 자연, 하늘과 땅 이모든 것이 공존해야 지속가능 한 것이다
친구와 함께 사진도 찍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소쇄원을 둘러봤다.
사람도 많지 않아서 기분 좋게 소쇄원을 둘러봤다. 
시 잘 쓰는 능력이 있다면 하서 김인후처럼 소쇄원을 노래했겠지만 그냥 이것 만으로도 너무 족하다.
특히 정말로 소중한 친구와 함께한 여행이어서 더욱 그랬지 않나 싶다 점심을 만나게 먹고 친구와 헤어졌다.
울 엄니는 언제 밀가루 친구를 다시 볼지를 모르겠다며 아쉬워하신다.
시골집에 가기 전에 친구를 먼저 만나면 어머니 갔다 드리라며 중고 트럭에서
곰표 밀가루를 한 푸대씩 주던 우리친구 남현이, 고맙다 친구야!
이제 어머니는 당신의 마지막을 생각하는 거다. 밀가루 주던 아들의 친구가 고마운 거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도 오래오래 친구 밀가루 받으실 수 있으세요.
이제는 친구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다.
이세상 어느 누구보다 정 많고 마음 따뜻한 내 친구 남현이와,  
고맙네 친구! 그리고 자네의 그 마음이 의재의 삼애 사상이고 남농의 인간사랑 아니겠는가!,
속 깊은 친구가 먼저 가라고 배웅한다. 친구와 노오란 은행나무가 오버랩되면서 시야에서 멀어진다.